여행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눈이 일찍 떠져서 새벽부터 혼자 산책을 했다. 식물원(보타닉 가든)에 가고 싶었지만 월요일은 휴일이어서 열지 않았다. 대신에 홋카이도구청사(아카렌카)를 보고 홋카이도 대학교를 걸었다. 첫 날부터 한 생각인데 삿포로의 공기는 참 맑다.

산책을 마친 뒤 아침을 사기 위해 샌드위치 가게 "Sandria"를 찾아 갔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은 아니고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로컬 음식점이라 찾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소박하고 귀여운 느낌의 테이크 아웃 전문 가게다.
사실 여행자에게 유명한 음식점이 아니면 외국의 음식은 입맛에 맞기가 힘들다. 그래서 한국어가 들리고 남들 다 가보는 가게이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는 유명한 곳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추천해주신 주민의 성의도 있고, 동네 샌드위치 가게인데 24시간 운영한다는 건 아마 인기가 있다는 증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갔다. 가게 안에 들어가면 친절하신 아주머니가 맞아 주신다. 내가 방문한 건 아침 8시 쯤이었는데 사람들이 꾸준히 왔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뭐냐고 묻자 "더블햄에그샌드위치"를 추천해주셨다. 고기 종류 중에는 뭐가 잘 팔리냐고 묻자 "돈카츠샌드위치"를 추천해주셨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사서 호텔에 돌아왔다.
더블햄에그샌드위치는 평범한 맛이었는데, 빵이 매우 부드러웠다. 돈카츠샌드위치는 신기하게 맛있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맛이었다. 내가 이 곳 주민이라도 이 가격에 이 맛이면 자주 들를 가게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재미있는 샌드위치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삿포로 TV 타워를 감상했다. 밤에 보는 것도 화려했지만, 아침에 맑은 하늘과 함께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점심 때에는 홋카이도 신궁에 다녀왔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숲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한낮에는 햇빛이 강한데 신궁으로 가는 길은 큰 나무가 많아서 더위를 느끼지 않았다. 종교적인 지식이 없어서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좋은 산책을 했다.

스스키노 골목에 돌아와서 점심으로 소바를 먹고, 후식으로 커스터드 크림 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소바가 내 입맛에 안 맞아서 우울해졌었는데 이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행복해졌다.
음식 하나로 기분이 우울과 행복을 넘나든다는 게 우습지만, 여행지에서 먹을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일상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순간을 의미있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리와 메뉴선택에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활에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결국 항공권을 변경했다. 

학교에서 원하는대로 9월 7일에 가는 것으로!

이유는 이렇다. 일찍 도착에서 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짐이 많은 것이 가장 문제였다. 

일주일 동안 맡겨둘 곳도 없고 여행을 하면서 그 많은 짐을 다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 여행을 일주일 동안 하려면 적어도 50만원은 필요한데,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9월 8일부터 오리엔테이션 기간이고 9월 27일에 수업을 시작하니까 그 사이에 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4박 5일동안 삿포로-오타루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까 내 체력이 생각보다 저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기차 여행 계획을 짰지만 무리일 것 같다.

 

여행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일단 적응을 하자.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7월 31일까지 항공편을 보내고 공항 픽업을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J-CAT TEST를 보기도 해야 한다. 그 전까지 일본어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려야지...!


일단은 내일 모레 JLPT N3를 보는 것부터 생각해야지~

힘내자~!! 

6월 26일
티웨이 항공을 타고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쾌속 에어포트 티켓을 구매하고 삿포로역으로 바로 왔다. 6시 정도 되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한국과는 달리 선선한 날씨에 놀랐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번화가인 스스키노 거리로 향했다. 라멘 요코초에 가서 맛있는 라멘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가는 길에 시계탑도 있고 TV타워도 볼 수 있었다. 스스키노 거리는 정말 화려했다. 특히 기린 이찌방과 삿뽀로, 아사히 일본의 3대 맥주 간판이 나란히 있는 것이 볼 만 했다.

라멘 요코초는 큰 사거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가면 나온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라멘 요코초에는 꽤나 실력 있어 보이는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달콤한 냄새가 나서 설렜다. 그 달콤한 냄새는 버터콘 라멘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가게 안은 모두 비좁았다. 여러 가게 중 곰이 그려진 것이 귀여운 가게에 들어갔다.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맥주와 교자를 시키고 버터콘 라멘 미소 맛을 주문했다. 먼저 나온 교자는 평범하지만 맛있었고, 맥주는 정말 부드러웠다.
그리고 나온 버터콘 라멘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맛...! 라멘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꿨다. 진짜 맛있다는 말과 행복하다는 말을 연발하게 만들었다. 삿포로에서는 꼭 버터콘 라멘을 먹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삿포로 클래식 맥주와 과자를 샀다. 과자를 고르는데 일본어를 잘 못해서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고른 맛은 김 맛 소금......실패였다...ㅎㅎ



여행에서의 하루는 신기하다. 같은 24시간인데 일상의 하루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날 설렘으로 잠 못이루고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공항에 도착하면 신이 나서 짐이 무거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만의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생경함과 낯설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기억났다. 어느샌가 여행이 '소비'와 함께 연상되고, 대학생이니까 혹은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관광 여행이 많아져서 여행을 떠나는 나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었다. 쇼핑과 관광 목적의 여행, 보여주기 위한 여행, 휴양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 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어떤 여행이 될 지도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행을 한다. 시간으로부터 익숙함으로부터 그리고 지루함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그런 여행이 된 적은 없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행 경비에 구속되고 나의 무력함을 느끼면서 좌절한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 과정에서 조금씩 쾌락을 느낀다. 세계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이 끝나면 또 여행을 할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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