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인생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말이야…” 혹은 내가 살아온 삶은 말이야…” 라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꼰대라거나 진지충’, ‘설명충등 재미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특히 어른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설교한다고 뒤에서 욕을 듣는다. 하지만 인생을 논하는 것이 그렇게나 기피해야 할 일일까?
 
  저자는 인생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생을 말하는 것은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을 숨김 없이 말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도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논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너무나 각박한 세상이다. 먼저 길을 떠나온 사람의 표지판이 없다면 다음에 떠나는 사람은 헤매고 만다.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여행자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더 지혜롭게 인생의 길을 걸어 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걷다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 위해서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앞서 떠난 사람들은 경험이라는 소중한 열매를 다음 사람에게 전해줘야 한다. 1950년대에 쓰여진 이 수필집은 그러한 따뜻하고 소중한 열매를 담고 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두 부분을 뽑자면, 청년에 대한 충언과 유한과 무한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청년에 대한 충언 부분이다.

 청년기란 여러 가지 복잡한 사실과 마음의 변동이 많고 생활의 폭이 넓은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마음의 방향,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이 항상 우리들을 채찍질하고 있어, 한 가지 일에 전 열정과 뜻을 퍼붓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과 불건전에 이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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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젊은 시절은 무엇보다도 근면한 시절로 보내야 하며, 많이 배우고 귀한 것을 얻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사교, 접대, 회합 같은 일을 배우는데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 중에는 때가 오면 저절로 알아지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 무가치하고 대단치 않은 일 때문에 긴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건전한 지식, 일생에 도움이 될 만한 독서, 필요한 외국어 같은 것을 배우며 자기의 것으로 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청년들은 언제나 생활의 폭이 넓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위치가 극단에서 극단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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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자에서 타락한 인간 사이를 몇 번이나 왕래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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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청년기는 극단에서 극단까지라는 마음의 위치와 본성을 미리 알아 조심하는 편이 좋다. 어제 아침에는 성자가 되고 오늘 저녁에는 악마를 자처하는가 하면, 정의에 생명을 던지면서도 악에 즐거운 웃음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젊은이의 특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정과 무한한 능력의 청년기는 곧 지나간다.

  1950년대에 쓴 그의 ‘청년’에 대한 고찰은 2017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매일 걷잡을 수 없는 열정과 불안함에 시달리며 극단에서 극단을 왕래한다. 어제 단단히 결심한 것이 오늘 바뀌고 그런 나의 변덕스러움을 한탄하며 또 좌절한다. 이러한 불안정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겹고 지친다. 저자는 한 발 앞서서 인생을 산 사람으로서 그러한 청년기는 곧 지나간다고 충고한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충고를 받은 사람이 ‘아, 그렇습니까? 역시 시간이 약이군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동받지 않을 것을 잘 안다. 저자도 청년들의 반응을 예상한다. ‘아니, 당장 해결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기다리기는 어떻게 기다리라는 거야’라고 불만을 제기할 것을 알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요동치는 자신을 반성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무엇보다도 근면하게 보낼 것을 충언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니냐고? 그렇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하고 있지 않으니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한과 무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왔다가 가는 것같이, 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얼마의 시간을 살다가 죽으면 그뿐 아닌가. (중략)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무의미한 것이며, 우연한 존재의 찌꺼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을 돌이켜본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 귀하고 절대적인 일도 없다. 내가 있으니 저 푸른 하늘, 넓은 대지가 의미가 있고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만일 내가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후략)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와 의의를 가지려 하는 것이 인간이며,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인간적 존재의 의의는 언제나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작은 의식이 광대한 우주가 차지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지극히 작은 정신은 이 세계가 소유하는 것보다도 더 깊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다. 파스칼이 “우주는 나를 생각할 수 없어도 나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주보다도 위대하다”고 한 말이 바로 그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인간 존재의 특수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첫째로 인간은 언제나 유한과 무한의 접촉선상에 살고 있다. 보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인간은 언제나 유한의 울타리 속에 살면서 항상 무한을 기대한다. (중략) 유한에 머물면서 무한을 얻고 소유하려 하는 데 모든 고통과 불행, 그러면서도 향상과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시간 속에 살면서 영원을 그리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후략)
오늘의 대표적인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은 무에서 와서 유를 잡으려 애쓰다가 무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운명 밑에 놓여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이 영위되고 있는 한, 우리는 확실히 유이다. 무시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온 곳이 무인 것처럼 가는 곳 또한 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에서 유로 향하는 처음 과정을 우리는 ‘생’이라 불렀다. 이 세상에 내가 탄생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는 마침내 무로 끝나게 마련이며, 우리는 생존에서 무로 가는 과정을 죽음이라 부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무로 향하는 과정이다. (후략)

  나는 인간은 갈대와 같다라고 한 파스칼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다. 그만큼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자주 느낀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위대한 점이라고. 자신이 가진 모순을 아는 것이 호기심과 탐구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인생이 무로 향하는 과정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무로 과는 그 과정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촉구하는 저자의 글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이 단순히 한 때에 유행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랑 받는 이유는 이러한 인간의 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미리 경고하자면 처음 책을 펴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마치 캠퍼스에서 가장 낡은 강의실에 앉아서 원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노()교수님의 강의는 조급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빠져 들고, 그 정수는 뒤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논하는 책 같지만, 유한과 무한, 신앙, 마지막에는 연애와 사랑까지 범위를 넓힌다. 이런 주제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저자의 사고에 공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다 보면 어느 새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어렵지만 친근하게 읽히는 책, 깊지만 따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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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부터 7일까지 오키나와를 여행했다.

'겨울에 왠 오키나와?' 하겠지만,

애초에 나는 해양 스포츠를 즐기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먼저 벚꽃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떠났던 오키나와 여행이 벌써 일주일 전의 이야기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따뜻한 추억으로 남은 이 여행의 이야기는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올릴 예정이다.

그 중에 오늘은 '오하코르테'라는 타르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오하코르테'는 국제거리에도 있는 유명한 카페 겸 베이커리다.

특히 국제 거리에 있는 큰 카페에서는 모닝 브런치가 유명하다.


하지만 오하코르테는 사실 후르츠 타르트 전문점이다.

tarte!tarte!tarte!


내가 방문한 곳은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小禄店 인데, 망가쇼고에 들르기 위해 갔던 곳으로 관광지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하코르테 베이커리 카페도 굉장히 작았고, 빵 종류는 팔고 있지 않았다.









외관부터 조용한 카페의 분위기가 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차분함과 단정함도 마음에 들었다.

카페의 분위기에 취해 나도 수줍게 타르트 하나를 골라서 주문했다.

과일들이 가득 올라간 타르트들도 있었지만,

점심을 막 먹은 배부른 상태라서 가장 기본적인 것 처럼 보이는

'쇼콜라 오렌지' 타르트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면 이렇게 예쁘게 세팅된 타르트가 나온다.

접시와 포크, 나이프도 너무 귀엽고 물수건 마저 아기자기 하다.

이런 세세한 것에 감동하다가 타르트를 한 입 먹었는데,

와 정말 맛있다.


과하게 달지 않고 쓰지도 않다.

쇼콜라와 오렌지가 잘 어울리는 걸 너머 그냥 원래부터 이런 것 같다.

여태껏 먹어본 타르트 중에 가장 맛있었다.

폭신폭신 할 것 같아보이지만 의외로 딱딱해서 씹는 맛도 느낄 수 있다.

분위기도 한 몫하지만 일단 타르트 자체가 맛있다.

다른 타르트들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과유불급이다.


이 하나가 이렇게 맛있었으니 오히려 그 맛을 잊게 할까봐 꾹 참았다.


타르트 하나에 오바하는 것 같지만,

여행의 마지막이 이렇게 맛있는 타르트였어서

5일간의 오키나와 여행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운 타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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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손에서는 요즘 코코이찌방야 (coco壱番屋)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코코이찌방야는 한국까지 진출한 대표적인 일본 카레 음식점인데, 한국에서는 9000원~10000원 대로 카레 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일본카레의 대표적인 맛이니까 이 정도 가격은 감안하고 먹을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일본 카레'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곳의 카레를 좋아했다.
일본에 살게 되면 코코이찌방야를 자주 갈 줄 알았는데, 6개월 동안 한 번도 안 갔다...ㅎㅎ한국에 비해서는 저렴하고 바로 집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가격이면 먹을 수 있는 다른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아서 안 가게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코코이찌방야는 한국처럼 외식을 하는 식당의 이미지보다는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직장인의 식사라는 이미지다.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 푸드인데 김밥 천국 같은 간편식의 느낌이다.
그런 코코 이찌방야가 요즘 로손과 콜라보를 해서 샌드위치, 오니기리, 오므라이스 등 편의점 음식들을 선보이고 있다.

내가 먹어 본 것은 로스 가츠 카레 샌드위치(ロースとん勝カレーサンド)와 오므카레 오니기리(オムカレーおにぎり) 두 가지다. 둘 다 진한 카레 맛이 만족스러웠는데, 그 중에서도 로스 가츠 카레 샌드위치는 정말 추천한다.

일단은 카츠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두께는  내 엄지손가락 두 개 정도로 두껍고 고기가 질기지도 않았다. 고기가 이렇게 두꺼운데도 카레와 양배추의 양과 조화가 잘 되어서 먹으면서 계속 '우와~'를 연발했다. 먹어봤던 가츠 샌드 류 중에서는 최고였다.

언제까지 이 콜라보를 할지는 모르지만, 드디어 코코이찌방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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