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묻는다면 그 때 그 때 너무 달라서 대답 못 한다. 행복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느끼는 거라서 '평균적으로 언제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은 어색하다.

하지만 가장 평안한 시간이라면 주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아침에 조깅을 한 뒤 아침을 먹으며 책을 읽는 8시 즈음 "

이 때가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보낸 하루에 대한 미련이 남는 저녁보다 더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이다. 앞으로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천하무적이 되어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는 조깅을 하다가 미나미센리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11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신작이 발표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800엔 (세금 불포)크리스마스 블렌드 오리가미 커피를 사고 테이블 매트를 받았다. 주로 책상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테이블 매트가 갖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다.

따뜻한 커피에 모닝빵과 버터, 그리고 《향신료의 역사》를 읽으며 보낸 아침.

<위플래쉬>라는 영화가 있다. 앤드류라는 드러머와 선생님의 이야기라는데 지나치게 이입할 것 같아서 나는 보지 않았다. 일 분짜리 예고편에도 열이 뻗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니 예술을 공부하다가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자람을 자책하는 내용이 많았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내가 모자랐어. 나도 앤드류처럼 목숨을 걸고 해야 했는데.


감독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앤드류는 슬픈, 껍질뿐인 사람이 될 것이고 삼십대에 약물 중독으로 죽을 것이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잔인하다.


그것은 네 책임이라는 뜻이다. 가능성은 있었는데 네가 모자라서 안 된 것이라고.


그것은 현대의 잔혹동화다.

성을 목표로 하던 사람들은 덤불에 갇히고, 성에 들어가 왕과 여왕이 된 사람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나는 잔인한 말을 쉽게 내뱉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버거워 허덕이고 있는 사람에게 '너는 할 수 있어, 기운내'라고 건성으로 말했다.


소중한 사람인데, 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후회라는 벌을 받고 있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손을 잡고 토닥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잔혹하게 말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사회의 압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사람에게

'내가 보기에 너는 잘 하니까, 더 열심히 하면 될거야'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며

왜 힘을 내지 않는 건지 답답해 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말 해야 좋을까?

또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다르게 말했다면 우리의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까.

관계의 구멍은 하나가 아니니까,

아마 내가 다른 말을 했더라도 다른 구멍에서 바람이 숭숭 새서

결국 우리는 끝이 났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지난 말에는 후회가 남는다.

그렇게 말하지는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 <귀를 기울이면>


일본어 원제는 耳をすませば(Whisper of the Heart) 이다.

보면서 공감해서 마음이 찡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열등감을 느끼는 것 등 많은 부분이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영화에 중요한 음악인 Country Road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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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디어 중독이라(아마 현대인이면 모두 그렇겠지만) 매일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무엇이든 꼭 봐야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택의 기준은 그 때 그 때 나의 감정이나 기분이다. 

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기분인지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어렵다. 

하지만 '오늘은 00가 보고 싶은 날이야' 라고 한다면 그 말이 그 날의 나를 표현해주는 것이다.


최근 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많이 봤다.

특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를.


요즘의 나의 감성에 적합하다.


나는 일본에 와서 좋다.


한국에서 있을 때 느꼈던 압박감이나 불안함, 우울함이 전혀 없어졌다고 하면 물론 거짓말이다.

현실의 압박감이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나의 욕심으로 인한 부담감 등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때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늦게 까지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즐겁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이런 생각이나

무언가를 알고 내 자신이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드는 '뿌듯함' 등 순간적인 감정이 삶을 지속하게 하는 정적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적인 감정들은 정말 그 순간 뿐이라,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게 끝이 없는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힘에 겨웠다.


요즈음의 나는 순간적인 정적 감정을 느낄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잔잔하지만 안정적으로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는 새벽에 아르바이트 출근을 위해 미나미 센리 공원을 지나며 보는 호수의 풍경,

문을 열고 내려가면 볼 수 있는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

예습 복습을 하는 것이 즐거운 심리학 강의들,

일주일에 두 번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과,

가끔 소식을 전달해주는 우편물과 지인들의 메세지 등.


'열등감'과 '성취감'이 지배적이었던 나의 머릿속이 이런 소소한 것들로 인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나의 '분노' '예민함' 같은 것들이 사라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나는 분노와 불안함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흔들리고 부유하고 화를 내면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예민하게 구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부조리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나는 더 현명해지고 싶다.


더 현명하게 분노하고 싶고 예민하게 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어쨌든 여기에서 매일매일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하고, 주위를 생각하고, 내가 속한 사회를 다른 사회와 비교한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시각이 넓어지고 있다.  


지금의 이 과정이 단순히 '인생을 즐겨! 인생은 행복한 거야!'라는 상태가 아니라

조금 더 성찰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가는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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