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겠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메리트는 폐기 식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편의점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 편의점에서의 알바니까 오죽하겠나. 그래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내가 일하는 시간에 주로 폐기되는 것은 그라탕과 도리아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가끔 가다가 샌드위치나 빵, 롤케이크, 야끼소바, 도시락 같은 음식을 받는 운 좋은 날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 중에서도 처음 먹어보는 오꼬노미야끼!
오사카에서는 흔한 음식이지만 밖에 나가서 사먹기 전에는 혼자 해먹기 번거롭기 때문에 자주 먹지는 않는다.

오코노미야끼라 하면 철판에 바로 구워먹어야 제대로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다. 가쓰오부시와 소스까지 따로 붙어나와서 먹을 때도 편의점 음식 특유의 부실한 느낌이 없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

비슷한 가격이니까 내가 사먹는거라면 밥이 있는 도시락을 사먹겠지만, 오사카 여행왔는데 일정 때문에 오코노미야끼를 못 먹고 간다거나 밥이 아니라 술안주를 찾는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2016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날,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소설 <69-식스티 나인>을 읽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인 선생을 제외하고,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내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패보아야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도 즐겁게 살야야지, 라는 결심을 하고 잠이 들었다.

변덕이 심한 편이지만 이번 결심은 꽤 오래 이어져서 다음 날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어디론가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다가 이전에 계획은 다 세워 놓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가지 못했던 교토 이치죠지에 가기로 했다.


이전부터 교토 이치죠지에 있는 게이분샤(恵文社)라는 서점에 가고 싶었다. 본래 독립 서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에서 본 이 작은 서점인데 간판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이유는 라멘이다. 이치죠지는 맛있는 라멘이 많은 골목으로 유명하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그대로 전차를 타고 출발했다.

아와지 역에서 한큐 교토 선으로 환승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툭 치며 아는 척 해왔다.

도쿄 여행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는 지인이었다.  비록 나의 차림새는 볼품 없었지만 부끄러움보다 반가운 마음이 컸다.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도쿄의 오미야게라며 급하게 '도쿄 바나나'의 포장을 풀어 하나 건네 주었다.

나는 같은 기숙사에 사니까 저녁 때면 또 볼 수 있는데 지금 주겠다며 그렇게 급하게 포장을 푸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감사히 받았다.



아침도 안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전차에 타서 허겁지겁 먹었다.

부드러운 빵에 달콤한 바나나 잼? 앙금? 여튼 속이 잘 어울어져서 정말 맛있었다.


특급 가와라마치 행을 탔기 때문에 35분 정도가 지나자 교토 가와라마치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이치죠지까지 1시간 반 정도를 걸을 예정이다.

버스를 이용하면 한 번에 편하게 가지만,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왠만한 거리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게 여행 중에 내가 빨리 지쳐 버리는 원인이지만...

혼자 여행할 때는 시간도 많고 걸으면서 구경할 수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걷는다.


가와라마치에서 이치죠지까지 가는 길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가모가와 강변을 따라 걷는 길과 헤이안 신궁을 지난 후로 걷는 골목길이다.




역시 나는 가모가와 강을 봐야 교토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기온 거리나 게이샤의 모습도 교토를 대표하는 풍경이지만 나에게 교토는 가모가와 강을 따라 걸을 때 가장 실감이 난다.

날씨도 좋아서 강변을 따라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1시간을 넘게 걸으니 드디어 이치죠지 골목에 진입했다.

우선은 첫 번째 목적인 라멘야로 갔다.

이치죠지 골목에는 간사이에서 유명한 라멘집들이 모여 있다.

대표적인 곳들이다.


이 중에 '天天有'와 '高安'도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한 곳이지만,

내가 오늘 목표로 정한 곳은 '極鶏(곡케이)'라는 곳이다.

ドロドロ(질척질척, 걸쭉걸쭉)한 국물로 유명세를 탄 닭 육수 라멘 전문점이다.



11시 30분이 오픈 시간이고, 내가 곡케이에 도착한 게 11시 45분 쯤이었는데 이미 사람이 많아서 대기표를 받아야 했다.

1시 쯤에 다시 오라는 것이다. 인기가 많다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순간적으로 '내가 이 정도를 기다려서 이 라멘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라멘 집을 갈까 고민했지만,

딱히 바쁜 것도 아니니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 목적인 근처의 게이분샤 서점에 가기로 했다.


바로 내 앞에 대기표를 받았던 젊은 일본인 남자 일행 4명도 뭐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엿들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1시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어' '뭐하지?' '배도 고파' '못참겠어' '다른 라멘야도 유명한데 많은데 가볼래?'

'그래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까 일단 하나 먹고, 여기에 또 먹으러 오면 되겠다'


나도 배는 고프지만, 나는 한 번에 한 끼밖에 못 먹는 위장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더 참고 일단 게이분샤 서점으로 향했다.



사진으로 간판만 봤기 때문에 작은 동네 서점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 외였다.

외부도, 내부도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가득 차있었다.

직원들이 직접 읽은 책만 서점에 진열한다는 규칙이 있는 곳인데,

이 넓은 곳에 이 많은 책들을 다 읽고 진열하려면 과로사하겠다는 개구진 생각도 들었다.

마침 새로운 스태프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한 때 서점 직원이 꿈이었던 나였기에 관심있게 봤지만 서점의 크기와 책의 양에 빠르게 단념했다.



드디어 약속한 한 시가 되었다.

혹시라도 늦으면 차례가 밀릴까봐 한 시에 딱 맞춰서 갔다.

이 때에도 사람이 많아서 지금 번호표를 받으면 2시 40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가게 앞에서도 더 기다려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의 사진은 규정 상 찍을 수 없었고, 메뉴판만 찍었다.

기본적인 라멘이 800엔 ~ 1000엔 정도 하는 데에 비해 모든 메뉴가 700엔으로 저렴했다.



나는 가장 기본인 鳥だく(토리다쿠)를 주문했다.

( 사실 주문은 가게 안에 들어오기 전에 한다. )

라멘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둘러 봤다.

작은 가게이지만 깔끔했다.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계산을 할 때마다, 자리에 앉고 일어날 때마다

라멘야만의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로 가게의 직원들은 '이랏샤이마세-'와 '오오키니-'를 크게 외쳤다.

손님이 많고 회전율이 빠른데도 불구하고 청결했고, 가게 안에서 부터는 더 기다리거나 하는 불편함이 없었다.

한쪽에는 곡케이 컵라면도 전시되어 있었다.


드디어 라멘이 나왔다...!



와! 이건 본 적이 없는 비주얼이야!!!

혼자서 감탄을 하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내 옆에 앉은 라멘 동호회에서 만난 것 같은 커플은 들어오기 전 같이 줄을 서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프로의 향기를 풍기더니,

라멘이 나오자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조용히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라멘 프로가 아니기에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그리고 면을 국물에 푹 담궈서 한 입 먹었다.

와... 진짜 절로 감탄이 나온다.

먹어 본 적이 없는 식감이다. 정말 진한 국물이다.

백숙 국물과 비슷할 정도의 깊은 닭 육수지만, 그보다 더 진하고 강렬하다.



한 입 먹고 그 도로도로함에 너무나 감탄해서 사진을 더 찍었다.

국물도 국물이지만 면이 국물과 너무 잘 어우러져서 계속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위에 올라간 파 고명도 입맛을 잡아주는 데에 한 몫했다.

보기에는 느끼해보이는데 오히려 먹을 수록 개운하다.

이런 마성의 라멘이 있다니!!!


내가 여태껏 먹었던 라멘 중에 가장 맛있었던 라멘은 삿포로 라멘 요코초의 '버터콘 미소 라멘'이었다.

그 라멘도 전형적인 라멘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교적 전형적인 라멘 중 가장 맛있었다.

그런데 이건 퓨전 신세대의 라멘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젊은이들의 라멘이다.

진짜 맛있다.  


아부라 소바나 츠케멘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국물을 선호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게 아깝지 않은 맛이다.



라멘을 먹은 뒤에는 부른 배로 행복하게 걸어서 헤이안 진구(헤이안 신궁)에 갔다.


곧 신년이기도 하고,

며칠 뒤에 한국에 잠깐 가니까 그 때 가족에게 전해줄 오마모리(부적같은 것)를 살까해서 일부러 찾아 갔다.

막상 사려고 이것 저것 보고 있는데,

이왕 사는 거 신년에 소원 빌러 신사 갔을 때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안 사고 그냥 나왔다.


다시 가와라마치 역까지 걸어 오니 4시가 넘었다.

추운 날씨에 꽤 오래 걸었더니 완전히 지쳐버렸다.



오늘의 여행으로 내가 조금 더 즐거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꽤나 즐거워졌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오히려 어딘가에서는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면,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곳에서 표출된다. 이 공간들은 한없이 개인적이면서도 공개적이다. 이런 인터넷 상의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은 특정 누군가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라 다수에게 자신을 표출하는 곳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누군가에게 말하면 위험해지는 금기는 아니다. 알려지면 비난 받기 때문에 나만이 알고 지켜야 하는 비밀도 아니다. 오히려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어딘가에 말하고 싶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요컨대, 감추고는 싶지만 비밀은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받는 곳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도 다르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일상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나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군가에게 자기 개시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친구나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런 유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든다. 그리고 그런 유대 관계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대면하여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늘 소통이 부족하다. 늘 대화가 부족하다. 다시 말해, 고독하다. 이 고독감을 해소 하고 싶지만, 또 다른 인간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이다.



도시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거나 나아가 타인이 자신의 속내를 나에게 털어놓는 것도 피하려고 합니다. 만나는 타인들 모두와 이처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면, 도시인들은 신경과민으로 쉽게 지쳐버리겠지요. 그런데 신경과민을 피하기 위한 이런 거리두기라는 도시인 특유의 삶의 태도가 바로 자유라는 감정의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타인에 대한 냉담한 거리두기가 삶의 양식이 되어 대도시에서 나와 타인은 서로의 삶에 거의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로 도시의 암묵적 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라는 도시인들의 냉담한 태도는, 다시 말해 이로부터 발생하는 자유로움의 감정은 사람들을 원치 않는 고독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냉담한 태도를 지속하다 보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이 주변에서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짐멜에 따르면 도시인의 자유 이면에는 이처럼 심각한 고독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대도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달콤함과 고독이라는 씁쓸함을 동시에 가져다 준 셈이지요. 가끔 도시인들은 가족을 통해서 자신들의 고독을 치유하려고 합니다. 가족이야말로 현대인의 마지막 보금자리라고 강조하는 것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을 치유하려면 결국 자신의 자유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비인격적인 도시생활의 냉혹함에서 발생하는 고독감 때문에 그는 힘이 듭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따뜻하고 푸근한 가족의 이미지를 떠올려봅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기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깨져버립니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결혼은 해야지. 너는 왜 아직도 사귀는 사람이 없냐? 담배를 끊어야 여자들이 좋아할 거 아니야?”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밥을 먹는 아들에게 누차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아니면 어머니는 낮에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들, 이웃과의 사소한 다툼에 대해 흥분하여 얘기하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이유도 없이 자신을 퉁명스럽게 대했다고 울분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면, 우리는 곧 피로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냉담함을 되찾고 자신의 방으로 말없이 숨어들어버리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신경과민을 어느 정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랜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집에 머물게 된 도시인들이 권태로움 혹은 가족 간의 지나친 사생활 침해로 불쾌감을 느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질식할 듯한 집에서 도망쳐 나올 것입니다. 그러고는 대도시의 중심부, 다시 말해 백화점, 영화관, 서점이 있는 곳,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의 군중 속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겠지요. 이 점에서 보면 도시인들에게 가족이란, 도시의 삶 속에 관념으로 존재하는 시골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골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는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도시 생활과 가정 생활은 미묘한 긴장관계와 보완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짐멜을 분석하는 강신주에 따르면 자본 주의에 바탕을 둔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은 자유를 누리면서 한 편으로는 그로부터 생기는 고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블로그와 트위터 등 익명의 공간에 자기 개시를 하는 현대인의 행동의 원인이 그 고독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를 원하는 인간 본성 혹은 전 자본 주의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관성, 그리고 자기 개시의 본능이 우리를 인터넷 상에 소리 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실제 생활 속의 누군가가 알고 "너 블로그 봤어~" 라던지 "너 트위터 계정 발견했다?" 등의 말을 걸어 온다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다. 지인에게 나의 인터넷 상의 공간을 발견 당했다는 것은 외롭고 나약한 내 모습을 들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너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나의 진짜 모습이 있다'라는 것도 들켰다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너무 비약적인 해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홍보하지 않은 계정을 누군가가 먼저 발견한다는 것은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맞은 해석이다. 비록 내가 부끄러울 만한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또 다시 숨을 장소를 찾아야 한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지인이 내 블로그를 봤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황했다. 곧 아무렇지 않아졌지만 내가 왜 당황한 건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어제 또 다른 지인과 대화를 하는 도중 그 사람이 흘려 가듯 '트위터'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어떤 말을 하는 지 궁금해져서 계정을 물어봤지만, '자신은 서브 컬쳐를 좋아하고 그를 위한 계정' 이라며 나에게 공개하기를 꺼려했다.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계정은 아마 지금 나와 마주하는 이 사람과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또 다른 면을 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자유와 고독의 상호작용으로 태어난 계정일테니 침해해서는 안 된다.



결론은, 혹시 트위터나 블로그를 돌아다니 던 중 자신이 아는 사람이 쓴 글 같아도 '얔ㅋㅋㅋㅋ너냐 이거?' 이런 식으로 아는 척하지 말아주세요. 사람에 따라서는 부끄러울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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