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났다. 어제 12시가 다 되어서 잤지만 등산의 후유증인가... 온 몸이 쑤셔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내 몸에 이런 근육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근육들마저 아팠다.
오늘도 계속 걸어야 하는데 몸 상태를 봐서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을 변경하고 일찍 일어난 김에 츠키지 시장에 갈까 했지만, 정성들여 만든 일정표이기고 하고 바꾸는 게 더 귀찮아서 그냥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숙소 바로 앞에 역이 있기 때문에 편하게 지하철로도 갈 수 있지만, JR은 신물이 날 정도로 타기 때문에 버스로 가는 여정을 택했다.

2.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와세다 대학 (早稲田大学)이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8시 조금 전이었는데, 신기하게 학교 정문이 닫혀 있었다. 8시 정각이 되자 종이 울리면서 문을 열었다. 마침 입학시험이 있는 날이었어서 일찍 도착한 수험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도 학생인 척 들어갔다.

와세다 대학교를 일정에 넣은 이유는 내가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된 계기라고 까지 말 할 수 있는(지금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를 졸업했고, 가장 좋아하는 일본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가 와세다 대학 중어중문학과 중퇴이기 때문이다. 이 둘이 와세다 출신이라는 것 만으로도 찾아올 가치는 충분했다.
와세다 대학의 앞은 우리 학교 앞과 마찬가지로 서브웨이도 있고 맥도날드도 있었다. 다른 점은 커리 가게가 정말 많았다. 와세다 대학 학생들은 커리를 좋아하나 보다...

3.
와세다 대학을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가구라자카까지 걸을 예정이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으로 맥주와 오징어 안주를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다. 무엇보다도 커피가 먹고 싶었다. 가구라자카에 거의 다 와갈 때쯤 210엔에 아이스 커피를 파는 카페가 보여서 들어갔다.

카페 벨로체인데 오늘 하루 종일 걸으면서 네 번은 본 것 같다. 한국의 이디야 수준이다. 저렴하고 보편적이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린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구라자카에 도착했다. '자카'라는 것 자체가 일본어로 坂(사카, 언덕)라는 말이기 때문에 경사가 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부터 내려간 거라 힘들지는 않았다. 가구라자카는 옛 일본의 유흥가?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외국 음식점들이 자리 잡았다. 내가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한데, 아라시의 니노미야가 출연한 <삼가아뢰옵니다, 아버님>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전통 일식집이라든지, 예전에 게이샤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다. 

여기가 바로 드라마 속에서 니노미야가 상경한 칸쟈니의 요코하마를 기다리던 곳...!
뭔가 두근두근 했다.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가 갔다. 안에 들어가니 아라시 팬들이 다녀 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쉽게 찾았던 '링고 계단'. 드라마 속에서 여주인공이 사과 바구니를 놓쳐서 사과들이 굴러떨어지는 것을 잇페이 (니노미야)가 주워주며 첫눈에 반한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예쁜 계단이다.

가구라자카는 좁은 골목과 돌 바닥으로도 유명하지만, 간식 거리도 많다. 점심을 먹기 위해 먹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면서 슈크림으로 유명한 베이커리 COMPAIN과 일본 유일의 페코짱야끼를 파는 FUJIYA도 볼 수 있었다.

4.
가구라자카를 지나 진보초까지 걸었다.

일본어 활자를 읽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서점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도쿄에 오면 꼭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와보고 싶었는데, 읽을 줄을 모르니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책의 거리인 진보초는 나에게 점심을 먹는 곳이 되어버렸다.
아쉽기는 하지만 나의 무지함을 탓할 수 밖에.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음식이 저렴하다. 그래서 대학가나 도서관 근처는 먹을 게 많다. 지식으로 배를 채워서 인가... 그보다는 공부하면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런 거 같다ㅎㅎㅎ

진보초하면 '사보루'와 카레 거리가 유명하지만, 내가 점심 먹을 곳으로 택한 곳은 하루키의 단골집이었던 덴푸라이모야(天ぷらいもや)다.

진보초는 애초에 주변에 대학가가 있기 때문에 형성된 책의 거리다. 그래서 대학생이었던 하루키도 이 곳에 자주 왔다. 그리고 그가 즐겨 먹었다는 700엔 짜리 덴푸라 정식을 파는 '덴푸라 이모야'.
자세한 설명은 http://naver.me/FxizcWF0 여기에 나와 있다.

내가 찾아 간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다. 손님은 4팀 정도로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메뉴는 덴푸라 정식과 에비 정식 두 가지다.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튀기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차와 된장국, 밥을 준비해준다.
이 된장국과 밥이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된장국에는 대첩인가 제첩인가... 여튼 작은 조개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밥은 찰기가 이제껏 먹어본 것과 달랐다. 밥과 국이 너무 맛있어서 덴푸라가 맛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덴푸라마저 감탄을 하게 했다. 튀기자마자 그릇에 올려줘서 기름이 남아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평소에 먹던 누런 튀김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번만 튀긴 데에다가 오래 기름에 담근 것도 아니어서 뽀얀 흰 색에 가까운 빛깔에 반죽은 두껍지 않고 눈꽃처럼 피어 있었다. 덴푸라 정식의 구성은 가지, 고구마, 가자미 (혹은 전갱이... 여튼 납작한 생선), 오징어, 새우가 각각 1개 씩이다. 가장 맛있었던 것은 전갱이인지 가자미인지 모르는 튀김이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그래도 진보초에 왔는데 서점 한 군데 정도는 들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눈 앞에 있는 서점을 들어갔다.
앗, 그런데 안이 심상치가 않았다. 양쪽에는 고양이 사진과 일러스트가 붙어 있었고, 진열대에 있는 책들은 모두 고양이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고양이 관련한 서적만 취급하는 '고양이 전문 서점'이었던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궁서체 한자로 간판이 되어 있어서 전혀 몰랐다. 
재미나게 구경을 하고 엽서를 구매하며 주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허락해 주셨다.

아무튼 진보초는 재미난 곳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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