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라는 영화가 있다. 앤드류라는 드러머와 선생님의 이야기라는데 지나치게 이입할 것 같아서 나는 보지 않았다. 일 분짜리 예고편에도 열이 뻗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니 예술을 공부하다가 결국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자람을 자책하는 내용이 많았다.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내가 모자랐어. 나도 앤드류처럼 목숨을 걸고 해야 했는데.


감독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앤드류는 슬픈, 껍질뿐인 사람이 될 것이고 삼십대에 약물 중독으로 죽을 것이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잔인하다.


그것은 네 책임이라는 뜻이다. 가능성은 있었는데 네가 모자라서 안 된 것이라고.


그것은 현대의 잔혹동화다.

성을 목표로 하던 사람들은 덤불에 갇히고, 성에 들어가 왕과 여왕이 된 사람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나는 잔인한 말을 쉽게 내뱉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버거워 허덕이고 있는 사람에게 '너는 할 수 있어, 기운내'라고 건성으로 말했다.


소중한 사람인데, 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후회라는 벌을 받고 있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손을 잡고 토닥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잔혹하게 말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사회의 압박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사람에게

'내가 보기에 너는 잘 하니까, 더 열심히 하면 될거야'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며

왜 힘을 내지 않는 건지 답답해 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말 해야 좋을까?

또 생각해도 모르겠다.


내가 다르게 말했다면 우리의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까.

관계의 구멍은 하나가 아니니까,

아마 내가 다른 말을 했더라도 다른 구멍에서 바람이 숭숭 새서

결국 우리는 끝이 났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지난 말에는 후회가 남는다.

그렇게 말하지는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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